요리를 보다, 어른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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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appyYJ 댓글 0 comments 조회 631 views 작성일 2026.01.16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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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 서바이벌을 볼 때 우리는 대개 비슷한 기대를 품는다. 누가 더 기발한가, 누가 더 완벽한가. <흑백요리사 시즌2>도 처음엔 그럴 줄 알았다. 블라인드 심사와 1대1 대결, 팀전과 탈락이라는 승패의 문법이 이야기의 엔진이 되는 전형적인 구도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회차를 거듭할수록 기다려지는 것은 점점 ‘이겼다/졌다’의 결과가 아니었다. 어떤 접시가 더 근사한가보다 그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 얼마나 단단한가가 더 궁금해졌다. 어느 순간부터 요리를 보다가, 그 너머의 ‘어른’을 보고 있었다.

그 전환이 아주 또렷하게 찍힌 장면이 하나 있다. 팀 대결 중, 57년 차 중식 대가 후덕죽 셰프가 묵묵히 참외를 무치고 있던 순간이다. 화면 속 그는 주인공이 될 조건을 다 갖춘 사람이었다. 업계의 신화 같은 경력을 쌓았고, 그의 손에는 켜켜이 쌓인 세월이 묻어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그는 전면에 나서지 않았다. 누군가의 지시를 조용히 받아들였고, 그저 묵묵히 참외를 무쳤다. 최고령의 대가가 ‘막내’ 같은 역할을 맡고 있는데도 이상하게 굴욕의 기운은 없었다. 오히려 그 정적인 움직임이 팀의 온도를 안정시키는 든든한 기둥처럼 느껴졌다. 그때 깨달았다. 이 프로그램의 진짜 백미는 요리의 승부가 아니라, 사람의 ‘자세’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후덕죽 셰프의 묵묵함은 단지 성격 좋은 사람의 미담으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그것은 고도로 단련된 기술에 가까운 태도다. 어른이 된다는 건 무엇을 할 줄 아는가보다, 무엇을 ‘하지 않을 줄 아는가’가 더 중요해지는 과정이다. 자신을 증명하려는 욕구를 앞세우지 않기, “내가 더 잘 안다”는 말을 쉽게 꺼내지 않기, 경험으로 상대를 눌러버리지 않기. 그는 아마도 더 빠른 방식도, 더 돋보이는 역할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가능성 중에서 ‘팀이 지금 필요로 하는 일’을 택했다. 어른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늘어놓는 사람이 아니라, 상황이 필요로 하는 것을 기막히게 알아채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그 장면은 보여주었다.

더 인상적인 건, 그 태도에 흔한 ‘겸손의 향수’조차 묻어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때로 겸손은 장식이 되기도 한다. “나는 괜찮아요”라고 말하며 사실은 자신이 더 큰 사람임을 은근히 과시하는 방식처럼 말이다. 하지만 후덕죽 셰프의 묵묵함은 자신을 작게 만드는 퍼포먼스가 아니라, 팀의 공간을 크게 만드는 선택처럼 보였다. 그가 조용히 자리를 지키는 동안 다른 사람들이 마음껏 움직일 수 있었다. 누군가는 지시할 수 있었고, 누군가는 도전할 수 있었으며, 누군가는 실수해도 괜찮았다. 그래서 그 묵묵함은 권위가 아니라 품격으로 읽혔다.

이 장면과 결이 닮은 말이 또 하나 있다. 박효남 셰프가 1대1 대결 상대에게 “나를 업고 훨훨 날았으면 좋겠다”고 덕담하던 순간이다. 서바이벌에서 흔히 기대하는 자극적인 독설 대신, 그는 경쟁의 규칙을 조용히 바꿔버렸다. 상대를 흔들어야 안심하는 사람은 사실 스스로 흔들리고 있는 사람이다. 정말 단단한 사람은 상대가 잘해도 무너지지 않는다. 그래서 어른의 품격은 종종 ‘상대를 깎아내리지 않는 방식’으로 드러난다.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누군가를 깎아내릴 필요가 없는 상태, 그것이 진짜 강함의 얼굴이라는 듯이 말이다.

아마도 시즌2가 후반으로 갈수록 더 깊이 남은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우리는 요리 프로그램에서 음식만 보고 싶어 하는 게 아니다. 결국엔 “저 사람처럼 살고 싶다”는 감각을 찾는다. 후덕죽 셰프가 참외를 무치던 장면은 요리의 비법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대신 관계 속에서 자신을 어떻게 둘 것인가를 보여주었다. 우리는 일상에서 늘 팀 대결을 한다. 회사에서는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가정에서는 돌봄이라는 이름으로, 사회에서는 경쟁이라는 이름으로. 그때마다 우리는 두 갈래 욕망 사이에서 흔들린다. ‘내가 옳다’고 인정받고 싶은 욕망과 ‘일이 잘되게’ 만들고 싶은 욕망. 어른의 품격은 그 갈림길에서 드러난다. 인정받는 길 대신 일이 잘되는 길을 택할 때, 말로 이기는 길 대신 관계를 살리는 길을 택할 때, 사람은 갑자기 어른이 된다.

다시 그 장면으로 돌아가 본다. 참외를 무치던 후덕죽 셰프의 손. 그 손은 오래된 기술의 손이기도 했지만, 오래된 마음의 손이기도 했다. 화면을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저 손이 무치는 건 참외만이 아니라, 팀의 긴장과 자존심과 불안도 함께 무치고 있는 게 아닐까 하고. 너무 큰 사람이 고개를 낮추면 그 자리에 모두의 숨통이 트인다. 어른의 품격은 그렇게 공간을 만들어낸다. 접시 위에 공간을 만드는 요리처럼, 관계 속에 공간을 만드는 사람.

요리 서바이벌을 보다가 어른의 자세를 배우게 될 줄은 몰랐다. 하지만 어쩌면 우리가 콘텐츠에서 진짜로 찾는 건 늘 그런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잘하는 사람을 보는 재미가 아니라, 잘 살아가는 사람을 보는 안심. 그 안심이 만들어내는 작은 변화들. 후덕죽 셰프의 묵묵한 손끝에서, 나는 오랜만에 ‘어른’이라는 단어를 기꺼이 믿어보고 싶어졌다. 그렇게 나는 요리를 보다가, 마침내 어른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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